“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기업의 CEO가 자랑하듯 하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조직에 대한 만족도와 충성심이 높다는 뜻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에는 리더십의 시야에서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는 맹점이 숨어 있다. 이직률이 낮다는 것이 과연 조직의 건강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변화와 순환이 정체되어 있다는 신호는 아닐까?
이직률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구성원 일부가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조직에 경각심을 준다. 누군가의 이탈은 조직의 구조, 문화, 업무방식 중 일부가 맞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 빈자리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구성원으로 채워진다. 이때 외부로부터 들어온 인재는 기존 조직에 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이렇게 일하나요? 왜 이 방식은 바뀌지 않았나요? 이러한 질문은 기존 구성원에게 자극을 주고, 조직의 관성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조직이 주기적으로 새로운 시선을 받아들이고, 내적인 습관을 점검하는 순환 구조야말로 진짜 건강한 상태다. 반대로 말하면, 이직률이 지나치게 낮은 조직은 변화의 자극이 사라진 조직일 수 있다.
이직률은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좋지 않다. 너무 높은 이직률은 조직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고, 인력의 빈번한 교체가 팀워크나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이직률은 조직 내 변화가 없고, 고인 물처럼 정체된 상태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조직은 변화와 혁신을 위해 주기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 외부에서 들어온 새로운 시선은 기존의 방식과 문화를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촉진한다.
실제로 2019년 잡코리아가 국내 500대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연평균 이직률을 조사한 바 있다. 응답한 179개 기업 중에서 이직률이 5% 미만이라고 답한 기업은 단 5곳이었다. 전체의 2.7%에 불과한 수치다. 가장 많은 기업들이 속한 구간은 10~20% 구간이었다. 이 결과는 일정 수준의 이직이 오히려 일반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구성원의 유출이 곧 조직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기업에서는 이직률 제로를 이상적인 상태로 인식한다. 한 중견기업의 CEO는 “우리 회사는 신입사원만 채용합니다. 경력직은 외부의 부정적인 문화를 내부에 가져올 수 있어 가급적 배제합니다. 순수한 문화가 저희의 경쟁력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은 조직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로 유지하고 싶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외부 자극에 대한 과도한 방어 태도를 드러낸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외부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이려는 리더십이 부재한 것이다. 조직문화는 보존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 속에서 스스로를 점검하고 진화할 수 있을 때에만 유의미하게 지속된다.
조직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은 잠시의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반복될수록 리더십은 무뎌진다. 우리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려면, 외부의 시선과 새로운 구성원의 시각이 필요하다. 내부 구성원끼리만 사고하고 판단하는 구조는 자기 확인과 자기 정당화에 빠지기 쉽다. 변화와 개선은 언제나 낯선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며, 그 질문은 내부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자주 나온다.
이직률이 지나치게 낮은 조직은, 마치 외부로 물이 흐르지 않는 저수지처럼, 처음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질은 나빠지고, 결국 고인 물이 썩게 된다. 변화의 자극이 없는 조직은 점점 생기를 잃고, 그 안에서 순환되는 것은 없어진다. 리더십이란 구성원을 무조건 오래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는 사람도 머무르게 만들고, 떠난 자리에 더 나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드는 일이다. 이직이 없는 조직보다 중요한 것은 이직이 있어도 끄떡없는 조직이다. 나감이 있어도 내부가 붕괴되지 않고, 유입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말로 리더십의 설계 능력을 증명한다. 이직률 제로는 잠시의 안정을 의미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리더십의 완성이라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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