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공간을 달려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 오랫동안 몰아온 G90은 고급스러운 주행감과 정제된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자의 판단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진 차였다.
고속도로에서 오토크루즈를 켜고 주행하다가 차선을 바꿔야 할 상황이 생기면, 나는 주저 없이 핸들을 살짝 돌렸다. 그러면 차는 그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 차선에서도 자율주행을 이어갔다. 기술은 조력자였고, 나는 운전의 주체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테슬라로 바꾼 후 처음 장거리 주행에서 느낀 감각은 전혀 달랐다. 테슬라의 ‘오토스티어’는 놀랍도록 매끄럽고 정확했지만, 마치 내가 아니라 차가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처음엔 단지 방식의 차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꾸기 위해 핸들을 돌린 순간, 오토스티어는 곧바로 해제됐고, 몇 번의 개입 끝에 화면에는 이렇게 떴다.
“남은 주행에는 오토스티어 사용 불가.”
운전자가 아니라, 무언가 잘못해서 제지당한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차가 나를 ‘가르치려 드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술이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에게 평가받고 교정당하는 위치에 있다는 자각. 그건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차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같은 자율주행 기능인데, 왜 이렇게 감각이 다를까? 그 질문에서 출발해 나는 각 회사의 비전과 미션, 그리고 CEO의 리더십 철학을 들여다보았다.
현대자동차는 “인류를 위한 진보”라는 미션을 중심에 둔다. 기술은 사람의 삶을 돕는 수단이며, 운전자의 판단과 개입은 언제나 존중받는다. 자율주행도 조력자로서 작동한다.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내가 운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미션 아래, 기술이 인간보다 더 낫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리더십은 효율과 논리에 기반한 냉철한 이상주의다. 자율주행 시스템은 인간의 개입을 예외로 간주하고, 시스템이 판단을 주도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문제가 아니다. 비전과 철학이 기술에 어떻게 투영되는가, 리더의 세계관이 어떻게 제품의 태도로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현대차는 인간과 기술이 함께 운전하는 미래를, 테슬라는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미래를 말한다.
테슬라의 디테일은 때때로 거칠고 무례하다. 사용자 경험은 친절하지 않고, 종종 불쾌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건방짐조차 테슬라 철학의 일부로 느껴진다. ‘우리 방식이 옳으니 따라오라’는 기술 중심주의의 오만한 선언처럼 들린다. 불친절하지만 단호하다. 그래서 불편함 속에서도 일관성을 느끼게 된다.
현대차는 다르다. 배려는 세심하고 사용자 경험은 훌륭하다. 하지만 때때로 그 유연함이 철학의 밀도를 희석시키는 순간도 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기술이지만, 그 안에서 내가 주도하고 있다는 감각은 도리어 희미해질 때도 있다.
어떤 기업 철학이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리더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의 반영일 뿐이다. 중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그 방향을 얼마나 일관되게 지켜내느냐다. 그 일관성의 여부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실제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가장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우리 가치를 무시할 때 오히려 단기 이익이 생기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결정할까?” 이 질문 앞에서 리더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조직 전체의 기준이 될 수도, 단순한 구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신뢰’가 핵심 가치라면, 고객의 신뢰를 다소 저버리고 돈 벌 기회가 있어도 포기해야 한다. ‘고객 중심’을 내세운다면, 고객의 불편을 감수하고 수익을 올리는 선택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