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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회의실에서 리더십이 시작됐다

Leadership

by nerdstory 2025. 7. 3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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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따라가시나요?”
그 질문 하나가, 내 리더십의 방향을 바꿔놨다.


2011년이었다.
그 해, 회사는 분사를 결정했다.
국내 1위 통신사였던 우리가, 플랫폼 쪽만 떼어내 비상장 자회사로 독립한다는 발표.
명분은 그럴싸했다. ‘정체된 음성 통화 수익 대신, 새로운 성장 모델로 도전하자’는 것.
하지만… 구성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제 난 비상장 기업 소속인 거야?”
“대출 받을 때 신용등급도 달라진다던데?”
“결혼정보회사 등급이 두 단계 떨어졌대…”
웃어넘길 수 없는 루머들이, 어느새 모두의 표정이 되어 있었다.

팀원들이 임원에게 전하고싶은 메세지 스크린화면, 임원워크샵 2012년말

그때 나는 팀장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는 하나.
“팀원들 전원, 전적(轉籍) 동의서 받아와.”
현장은 혼란스러웠다.
노조는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고,
몇몇 팀장들은 주말에 팀원들 집 앞까지 찾아갔다. 설득이 아니라 압박처럼 보였다.
감정은 갈라졌고, 조직은 흔들렸다.
나도 2주의 시한을 받았다.
하지만 첫 주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설득할 자신도, 강요할 용기도 없었다.
그들도 혼란스러웠겠지만, 사실 나도 똑같았다.


시한 마지막 날. 결국 회의실로 한 명씩 팀원들을 불렀다.
첫 번째로 들어온 팀원.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팀장님은 따라가시나요?”
나는 말했다.
“당연하지. 티스토어는 내 셋째 딸이잖아. 내가 안 가면 누가 키워.”
그녀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도 갑니다요. 근데 진짜… 2주 동안 한 번도 안 부르시고, 속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시크하게 “파이팅!” 하고 나갔다.
그 순간,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신입 때부터 함께한 동료. 전형적인 T 성향이라 감정 표현 같은 건 잘 안 하던 사람인데…
그 말 한마디에, 뭔가 무너져내렸다.


두 번째 팀원은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팀장님 따라가신다면서요? 동의서 주세요. 사인하게.”
그렇게, 한 시간도 안 돼서
15명 전원, 모두 자발적으로 전적 동의서에 사인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믿은 건 회사가 아니라, ‘함께 했던 시간’이었고, 어쩌면 ‘나’였던 것 같다.
그날, 나는 리더라는 단어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 이 사람들의 인생을, 나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기술만 열심히 파던 개발자였던 내가
처음으로 ‘경영’이란 걸, 그리고 ‘리더십’이란 걸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는 티스토어를 ‘내 셋째 딸’이라며 애지중지 키웠다.
두 딸 수미, 혜린에 이어, 티스토어.
출시 1년 3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1억 건.
밤새고, 회의하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우리 팀은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나는 다른 걸 보게 됐다.
결국 회사라는 건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성과, 기술, 수치.
그 모든 것 이전에,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그 무렵, SKMS(SK Management System)를 다시 읽었다.
“기업은 안정과 성장을 지속하여 영구히 발전하며,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추구한다.”
승진 시험 준비할 땐 외워만 댔던 문장이, 그날 처음 가슴에 들어왔다.
경영의 목적은 성장이 아니라, 행복이었다.


몇 해 뒤, 최태원 회장이 이런 선언을 한다.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구성원의 행복이다.”
그리고 약속한다.
“행복 토크 100회를 하겠다.”
다들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진짜 100번 했다.
직접 구성원들을 만나, 질문을 듣고, 답하지 않고, 경청했다.
그걸 보며 다시 생각했다.
리더는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지금도 나는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전적 동의서 위에 조심스레 사인하던 팀원들의 손을.
회의실 문을 나서며 “파이팅!” 하고 웃던 그 표정을.
그리고 내게 매일 묻는다.
“이 결정은, 우리 팀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걸까?”

미국 팀이 느낀 티스토어의 성공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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