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감성과 판단의 영역이지만, 방향을 정할 땐 나침반이 필요하다. 그 나침반이 바로 숫자다. 숫자는 방향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고, 팀이 가는 길에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더해준다. 감정은 순간의 동기를 줄 수 있지만, 숫자는 지속 가능한 동력을 만든다.
경영자에게 숫자는 불편한 존재다. 외면하면 반드시 문제를 키우고, 마주하면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숫자는 결국 가장 진실한 조언자다. 리더는 숫자를 읽고, 숫자로 말해야 한다.
최고경영자 과정을 통해 알게 된 한 대표님은 물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이었다. 대기업에서 물류 배송을 담당하다 독립해, 경기도 이천 톨게이트 인근에 물류센터를 직접 세우고 30년 넘게 경영을 이어온 인물이다.
코로나 시기, 온라인 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물류 수요가 급등했고, 그의 사업도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기존 물류센터를 무려 10배 이상의 가격에 매각하면서도 운영권은 유지했고, 그 자금과 추가 대출을 합쳐 기존의 두 배 이상 규모의 새 물류센터를 짓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 물류센터 부동산은 무조건 오른다”는 자신감. “나는 물류센터를 30년 동안 운영해봤다”는 경험. 모두가 그의 결정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업은 더 번창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코로나 펜데믹이 끝나고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상황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배송 수요는 줄고, 새 센터 건설에 투입된 대출 이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매달 순손실이 누적되었고, 물류센터를 급히 매각하려 했지만 고금리 상황 속에서 투자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현금 흐름이 막히자, 경영은 멈췄다. 그는 경험도, 실적도, 전략도 모두 갖춘 경영자였다. 하지만 현금이 마른 순간, 모든 것은 끝이 났다.
“큐텐의 정산 지연은 단순한 내부 실수라기보다 실적 부진과 유동성 악화가 겹친 구조적 문제다.” (2024년 12월, 전자신문)
한동안 전자상거래 업계에서 ‘할인권 마케팅’으로 유명했던 큐텐 계열사.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숫자를 외면한 경영이 있었다. 겉으로는 거래가 활발했고, 고객도 많았다. 하지만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정산금을, 적자난 계열사의 운영자금으로 ‘잠시’ 돌려 쓰는 일이 반복됐다. 그 돈을 메우기 위해 할인쿠폰을 팔아 선결제를 유도하고, 그 선결제금으로 정산금을 갚는 식의 돌려막기가 이어졌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이 적자는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손실이었다. 계열사의 지속적인 적자 → 판매자 정산금 전용 → 할인권으로 구멍 메우기 → 또 다른 정산금 지연. 결국 큐텐은 실매출이 아닌 선결제금에 생존을 의존하는 구조에 빠졌고, 2024년 중반, 판매자 정산금 지연 사태로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 고객의 결제금으로 판매자에게 정산을 미루는 방식은 사실상 신뢰의 파산을 의미했다.
정산금이 어음처럼 돌고 있었고, ‘실제 매출’은 거의 없었다. 리더가 이 숫자 앞에 정직했다면, 적자가 심화되던 시점에 구조조정을 하거나 사업 모델을 조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현금 흐름만으로 버티는 전략은 결국 조직 전체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끌고 갔다.
앞의 두 이야기는 너무도 다르면서, 너무도 닮아 있다. 하나는 30년을 운영해 온 전통 산업의 대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와 마케팅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플랫폼의 이야기다. 하지만 모두 같은 지점에서 무너졌다. 현금 흐름이 끊긴 순간.
경영이란 무언가를 이루는 행위이다. 달성하겠다고 말한 것은, 달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실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숫자는 그 실적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언어다.
숫자를 외면하지 말라. 숫자가 말하는 현실을 팀과 공유하고, 그 숫자를 기준으로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불편한 숫자일수록 더 빨리 봐야 한다. 숫자에 담긴 신호를 읽지 못하면, 조직은 이미 방향을 잃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리더십은 결과로 증명된다고. 그러나 진짜 리더는 결과 이전에 흐름을 먼저 읽는다. 그리고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해 움직인다.
숫자는 냉정하다. 그래서 믿을 수 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외면하는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