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가 아동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고 밝히면서 찬반이 뜨겁다. 청와대 청원사이트에는 지역화폐 지급 반대 청원 글이 십여 개나 올라와 있고, 그 중에는 1만 명 넘게 동의를 받은 글도 있다. 한 방송사는 대상자의 94.5%가 현금 지급을 원한다는 설문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주민들이 지역화폐 지급에 반대하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수당을 수령하기 위해 관청에 직접 방문하는 것이 번거롭고, 생활 반경에 사용처가 너무 적어 불편하며,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곳도 온라인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무릅쓰고) 지역화폐 사업을 활성화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지방 세수를 비롯한 지역 자본이 가급적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순환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기 바라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2,000년 대 중반 이후 서민과 소외계층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지역상권을 활성화 함으로써 소득 성장과 공동체 자원의 순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한 정책수단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지류상품권 형태로 통용되고 있는 현행의 지역화폐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째,
사용처가 제한적이어서 활성화되기 어렵다. 사용처가 많지 않다 보니 사용자는 사용처를 찾는 것이 일이 되고, 사용에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지역화폐가 현금과 등가가치를 갖지 못하게 되는 단점이 생긴다. 일정 할인율을 감안하고 소위 '깡'을 해서 현금화 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암시장을 통해 지역화폐의 실질가치가 무너지게 된다.
둘째,
지류상품권은 상대적으로 높은 유통 비용이 발생한다. 인쇄, 운송, 보관 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수령자도 지역주민센터나 보건소에 방문해서 수령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셋째,
지류상품권형태는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추적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수표처럼 이서(裏書)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지예산이 수급자에게 목적에 맞고 의미있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많은 지역상품권이 '깡'을 통해 현금화된 뒤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유흥 등에 사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지자체도 이러한 단점들을 알고 있기에 지역화폐를 디지털화 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이 높은 투명성과 보안성, 효율성을 제공해 주는 솔루션으로 부각되면서 많은 지자체들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지역화폐를 출시하겠다고 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지역화폐가 출시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일부 문제들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우선 디지털화 됨으로써 유통, 관리 비용은 절감될 것이다. 블록체인에 공개된 거래 내역 데이터를 통해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해져 예산 집행의 투명성도 개선될 수 있다. 생성된 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함으로써 추후 정책 입안의 귀중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아동수당 지급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바꾼다고 생각해보자. 지금은 아이 부모들이 가족증명을 포함한 다양한 서류들과 신청서를 관청에 찾아가서 제출하면 담당 공무원이 자격을 심사 후 확정이 되면, 서명을 받고 상품권을 지급해 준다. 여기가 끝이다. 이후 상품권이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블록체인 기반에서는, 별도 서류 없이 블록체인을 통해 인증된 본인 계정으로 지역화폐가 발급되게 된다. 수령자는 신용카드와 같은 금융 수단 연계 없이도 핸드폰만으로 가맹 되어 있는 온/오프라인 상점 어디에서나 현금처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지역 상인들은 쉽게 정산할 수 있고, 영세상인들은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고 지역 내에서 본인의 소비에 다시 사용할 수도 있다. 지방정부는 지급된 복지예산의 사용을 비용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 언급한 '사용처 확보' 문제의 해결은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몫이다. 온라인 오픈마켓의 경우처럼 플랫폼이 커지고 보편화 됨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상점들도 늘어나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누군가 사용처를 확보해 줘야 한다. 얼마나 많은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가, 혹은 보유할 수 있는가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지역 상점들은 온라인 보다 가격이 비싸다'라는 문제도 블록체인 자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유통 구조가 다른 오프라인 지역 상점들이 무작정 온라인 가격에 맞춰 가격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상점들은 (지불수단과 연계된) 마케팅 툴이 필요하다. 지역 기반 상점들은 그 특성상 단골이나 재방문, 재구매 하는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원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고객별 등급제 마케팅이나 차별적 마케팅을 도입할 여력이 없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지역화폐를 디지털화 또는 블록체인화 하더라도 '운영'의 이슈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보다는 '누가 하느냐' 또는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단순히 복지 예산을 디지털 지역화폐화 해서 유통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복지 수혜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고 나아가 시민들의 생활 편의성이 높아질 수 있는 추가적인 가치가 제공되어야 장기적으로 지역화폐가 활성화, 보편화 될 수 있고 사업이 당위성을 얻을 수 있다.
고객과 상점 각각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허들을 낮춰 줄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파트너, 한계를 보완하고 효과를 극대화 시켜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나게 될 때 지역화폐는 보여주기 식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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