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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에서 혁신을 배우다

Leadership

by nerdstory 2025. 4. 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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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출장길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찾은 건 오직 한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르셀 뒤샹의 <샘>. 몇 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도슨트로부터 들었던 그의 개념미술 철학이 내게는 꽤나 큰 울림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로 <샘>은 단순한 예술작품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겉보기엔 별볼일 없는 남자용 소변기. 하지만 뒤샹은 그것을 거꾸로 놓고 서명 하나를 휘갈긴 뒤,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선언했다. 당시는 마티스의 야수파, 피카소의 입체파가 예술의 경계를 넓히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뒤샹은 물리적 창작조차 없는 기성품 하나를 예술이라 주장했다. 이 도발은 예술계에 커다란 질문을 던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당시에는 예술가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야’ 진짜 예술로 인정받던 시대였다. 그런 암묵적인 규칙에 반기를 들고, 뒤샹은 “예술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라 외쳤다. 그는 관객의 역할을 작품 창조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예술의 해석은 예술가의 손을 떠나, 관객의 시선과 생각 안에서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 선언은 예술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리더십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리더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리더는 팀과 조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익숙한 틀을 의심하게 만들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사람. 즉, 소변기를 예술로 만든 사람처럼, 리더는 의미의 지평을 바꾸는 존재다. 그게 혁신의 시작이다.


비즈니스 세계도 다르지 않다. 모든 기업이 “고객 가치”를 외친다. 하지만 고객이 느끼는 가치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변하지 않는 진실이 하나 있다면,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고객의 마음도, 기대도, 일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업은 망한다.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은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공간을 공유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우버는 ‘자동차를 소유해야 이동할 수 있다’는 상식을 무너뜨리고, 오직 사용 경험에 집중했다. 이들은 새 기술을 개발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기술을 고객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다르게 연결’했을 뿐이다.


하버드의 테이셰이라 교수는 “시장 파괴의 진짜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달라진 고객이다”라고 말했다. 기존 고객이든, 새로운 고객이든, 그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발견하는 것이 진짜 혁신의 시작이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결국, 리더의 역할이다. 고객의 불편을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의 눈. 기술보다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백남준도 예술가인 동시에 뛰어난 혁신가였다. 그는 “진실보다 중요한 건 새로운 것이며, 아름다움보다 중요한 것도 새로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그는 휠체어에 앉아 예술을 멈추지 않았다. 신문을 읽고,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며, 세상 모든 것과 예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예술, 기술, 미디어, 상업… 그는 익숙한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 리더였다.


뒤샹이 예술의 해석을 관객에게 넘겼듯이, 리더도 조직의 방향을 직원들과 고객의 관점 안에서 재해석하게 만든다. 완성된 정답을 전달하기보다,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리더의 진짜 역할이다. 혁신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 기존의 상식을 비틀어 보는 질문,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리더십이란, 소변기를 예술로 보게 하는 힘이다. 리더는 “이건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건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 질문 하나가, 해석을 바꾸고, 가치의 정의를 바꾸며, 세상의 판을 흔든다.
혁신은 그런 리더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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